'일사천리' 국회통과했던 'N번방 방지법'…1년반 지나서야 논쟁 시작? [성상훈의 정치학개론]

입력 2021-12-20 07:00   수정 2021-12-20 08:56


"대부분의 경우 국회의원의 90%는 본회의에 상정된 법안들이 뭔지 모르고 회의에 들어가, 내용을 잠깐 보고 찬반을 던진다"

최근 열린 N번방 방지법 관련 토론회에서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토론회 참석자 한명이 '도대체 현재 이렇게 논란이 큰 법안이 통과 당시는 어떻게 그렇게 쉽게 처리됐나'라는 질문에 수많은 동료 국회의원을 본 의원으로서 일종의 '고백'을 한 셈입니다.

언론인으로서 지켜본 국회의 모습도 하 의원의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국회를 출입하게 된 이후 '법이 이렇게 쉽게 통과 된다고?'라거나 '법을 통과시킨 의원이 적작 법안의 자세한 내용은 이렇게 모른다고?'라며 놀란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N번방 방지법의 논쟁 내용은 수많은 다른 토론과 기사등에서 다뤄지고 있으니 여기서는 논외로 하겠습니다. 중요한건 왜 이같은 논쟁이 법안이 통과된지 1년 반이 넘어서야 시작됐냐는 겁니다.
만연한 '졸속 법안 심사'…전문성 없는데다 무관심하기까지

국회의 법안은 국회의원이 법안을 발의하면 이후 각 상임위원회(기획재정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외교통일위원회 등)→법제사법위원회→본회의 순으로 처리됩니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법안이 발의되면 가장 먼저 '법안 상정'을 거쳐 상임위 소위에서 세부적인 논의가 시작됩니다.

디테일한 논의가 끝나면 상임위 전체회의에서 의결됩니다, 다음단계인 법제사법위원회로 가면, 이제는 법안의 문구가 '법적으로' 이상하진 않은지 등을 심사하는 '체계·자구 심사'를 거치게 됩니다. 여기까지 넘어서면 마지막으로 우리가 흔히 TV에서 볼수있는 본회의장으로 가게 되고, 찬반투표를 거쳐 국회의장이 의장봉을 두드리면 법안은 최종적으로 처리됩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은 상임위입니다. '국회는 상임위 중심주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실 법안의 내용을 따지고, 부작용은 없는지, 법안의 파장은 어디까지 일지 등에 관한 가장 심도깊은 논의가 이뤄지는 곳입니다.

하지만 사전적 정의가 그럴뿐 많은 법안들은 부실한 검증을 거쳐 상임위를 넘어섭니다. 하 의원은 본회의에서의 '무지'를 꼬집었지만, 상임위에서도 이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N번방 방지법' 중 하나로 불리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2020년 5월 4일 처음 발의됐습니다. 이후 상임위인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에서 5월 6일 상정된후 단 한번의 상임위 소위 회의를 거친후 즉각 처리됐습니다.

이후 별다른 논의없이 20일 법사위 상정하자마자 통과됐고, 그날 본회의까지 '일사천리'로 처리됐습니다.

정리하자면 발의된 법안이 2주가 조금 넘은 시점만에 국회를 통과됐고, 그 과정에서 회의는 '단 한번' 뿐이었던 셈입니다.

2주간 단 한번의 회의로 법안의 부작용, 과잉입법 여부, 파장 등을 논의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지금의 혼란은 사실 예견된 일이었다는 의미입니다. 'N번방 사건을 막자는 거니 뭐 좋은 법이겠지, 나는 바쁘니 관심을 크게 주기가 어렵다'는 태도로 밖에 볼 수가 없습니다.

처벌 과잉, 악용 가능성 논란이 큰 '민식이법' 역시 비슷한 과정이었습니다. 법안을 대표발의한 한 의원은 법 통과후 논란이 커지자 "법안 논의 과정에서 처벌 규정이 합리적으로 조정이 될 줄 알았는데 그대로 통과되길래 나도 놀랐다"고 말하는 촌극도 벌여졌습니다.



법안을 졸속 통과시키자마자 비판이 쏟아지자 다시 법을 바꾸는 일도 있었습니다. 국회는 지난해 5월 면허 없이도 전동킥보드를 탈 수 있게 하는 이른바 '전동킥보드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시민들의 관심이 매우 큰 문제임에도 공청회 등 별다른 의견 수렴 절차나 논의 과정은 없었고, 법 통과 후 법안이 시행되기 직전인 12월 안전 문제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다시 면허를 의무화하고, 헬멧을 강제화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했습니다.

국회가 법을 통과시켜 놓고 7개월 만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부랴부랴 다시 '또' 법을 재개정한 셈입니다. 하지만 재개정 과정에서도 제대로된 상임위 논의 과정은 없었고, 추가된 헬멧 강제화 조항이 '현실성이 없다'며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몇가지 예를 들었지만, 이외에도 수많은 법안들이 주목도 받지 못한채 별다른 논의과정 없이 시졸속 심사를 거쳐 국회에서 처리되고 있습니다. 크게 두가지로 정리하면 여론이 과열돼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 또 하나는 쟁점 법안이 아니라 관심이 없어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21대에 처음 국회로 입성한 한 초선의원은 "의원들이 이 정도로 전문성이 떨어지고 법안에 무관심할줄은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국회의원에게 우선순위 밀린 '법안 심사'
의원들에게도 변명거리는 있습니다. 먼저 국회의원들은 다수의 선입견과 다르게 너무 바쁩니다. 지역구를 관리하고 지역구 민원을 들어주고, 각종 단체 행사에도 참여해야 합니다. 특히 지방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은 국회에 있는 시간 만큼, 경우에 따라서는 국회보다 지역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바쁨'이 국회의원 본연의 역할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국회의원은 애초에 '지역 해결사'이기 이전에 전체 국민들을 대표하는 '의회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의원들이 상임위에서 '좋은' 법안을 발의하고 심사하고 논의하기 보다는, 한번더 당선되기 위한 지역구 해결사 노릇에만 목을 매고 있습니다.

앞에서 예로 든 'N번방 방지법'이나 '민식이법'의 경우, '반대하면 여론에 묻힌다'는 의원들의 두려움도 있었을 거라고 예상됩니다.

반대하거나 신중한 의견을 내는 것이 극악무도한 성범죄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모습으로 비쳐지거나, 어린이 사망 사건과 어린이 안전을 경시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분위기가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무거운 자리입니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란 무거운 자리에 있는거라면 그 정도 '합리적 소신'은 보여줘야하는건 기본적인 '의무'입니다. 애초에 법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거라면 모를까, 분명히 잘못됐다고 생각하는데도 여론이 무서워 침묵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합리적 의견이라면 향후 반드시 '재평가'가 이뤄진다는 것도 알았으면 합니다. 민식이 법의 경우 이미 대부분의 국민은 '과잉입법이었다'는데 손을 들어주고 있습니다.

법안심사의 무관심한 다선 의원들의 경우, 대개 '큰정치'에 집중한다며 법안 논의를 경시합니다. 상대당과의 공방, 선거 전략 수립, 당의 여론전, 당 인사 관리 등등 '정무적'인 정치에 주로 집중합니다. 하지만 법안 발의와 심사는 의원으로서 '기본'이라는 걸 놓치고 있는건 아닐까요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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